금융권위기가 되풀이 될 조짐을 나타내면서 달러와 엔화 확보전쟁이 외화 실수요자의 고민을 깊게 하고 있다.

유럽발 금융권 신용등급이 현실화되는데다 미국발 더블딮 우려가 커지면서 세계교역의 달러를 기준으로 한 준기축통화의 확보전쟁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화가치의 급격한 하락에 수반되는 외화대출자나 해외송금이 필요한 유학생 부모의 경우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루 사이에 필요한 자금이 예상을 벗어나 자금계획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안정된 원화가치를 바탕으로 과감하게 자식공부를 위해 기러기 아빠역할을 자임했던 중산층 가장은 경제의 예상할 수 없는 흐름에 자괴심만 깊어지고 있다.

추석 후부터 시작된 환율의 불안정은 시장에서 즉각 반응했다. 엔화 가치는 10.0%나 급등해, 달러(9.3%)보다 더 가파른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 금요일인 23일 기준 원-엔 환율도 100엔당 1529원으로 2008년 '리먼 브라더스 사태'때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던 2008년 10월의 1544원에 육박하고 있다.

외환시장의 급변동에 의한 엔화 대출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엔화대출의 금리 구조는 '외화채권 가산금리에다 리보금리(런던 은행간 금리) 및 개별 가산금리'로 합산돼 있다. 유럽발 재정위기와 미국 신용등급 강등 여파로 최근 금융시장이 요동치면서 외화채권 가산금리와 리보금리가 급등하자 엔화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이자부담이 눈덩이처럼 전가되고 있다.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가? 엔화 대출로 고생한 의사 등 전문직업계층의 고통에 겨운 신음이 나오고 있다.

종합병원에서 전문의로 근무하다가 치과의원을 운영 중인 40대 후반의 김 모 씨는 원-엔 환율이 100엔당 당 840원대였던 2006년 8월 한 시중은행으로부터 2억 원을 대출받았다. 당시 금리는 연 1%대 후반 이었고 매달 납부해야 할 이자는 30만 원대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그는 엔화에 대한 원화가치 하락에 따라 매달 140만 원이 넘는 이자를 내고 있다.

현재 국민, 우리, 신한, 하나, 기업, 외환 등 6대 시중은행의 엔화대출 잔액은 8484억 엔으로 원화로 약 13조 원에 해당되나 환율변동에 따라 늘어날 우려가 크다.

유학생 자녀를 둔 부모나 기러기 아빠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미국에 고등학생 아들 1명을 유학 보낸 40대 직장인 한 모 씨는 "여름휴가철인 7월 말과 비교할 때 달러 환율이 120원이나 급등했다"며 "1년에 학비와 생활비가 5만 달러 가량 드는데, 불과 2개월 새 600만 원의 부담이 늘어난 셈"이라며 손사레를 쳤다.

그는 “이런 식으로 환율이 상승하면 유학을 계속 유지할 대책이 없어 아이를 귀국시켜야할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지었다. 캐나다에 자녀 2명을 유학 보낸 40대 후반 직장인 김 모씨도 “캐나다달러 가치가 9월 초보다 60원 상승하면서 연간 300만 원 이상을 추가로 필요하게 됐다”며 “신학기를 앞두고 있어 여러가지로 아이들이 쓸 돈이 많은데 어떡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걱정에 빠졌다.

외화로 결제하는 비중이 높은 항공, 정유, 식품 관련 기업들도 울상이다. 원자재 값이 올라도 이를 당장 제품이나 용역가격에 반영하기는 쉽지 않고 “환율 오를 때는 가격을 바로바로 올리면서 환율 떨어지면 왜 소비자가격을 인하하지 않느냐”는 소비자와 정부의 반발이 거세기 때문이다. 환율의 급속한 변동에 따른 수출기업들의 염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현재의 환율급등은 기본적으로 세계경제의 침체기에 수반된 것인데 이것이 수출경쟁력이 보탬이 되기보단 해외에서 수요감소로 이어져 수출산업계에 타격이 우려되기 때문이다.